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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년기 플리

14:52
  1. She&Him 1집. <Volume One>

쥬이 디샤넬. 내 이상형이었다.
한동안 쉬는 시간마다 뒷자리에 모여(남친마냥 목에 핏대를 세우며) 자기 이상형 자랑들을 늘어놨는데, 이유를 물어보면 그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거라고 했다. 웃는 모습이 아주 예뻤다. 내 눈엔 언제든 삶을 즐길 자세가 준비돼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. 어렸던 당시엔 그런 사람이 없거나 매우 드물다고 생각했다. 그게 전부다.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.

  1. Elliott Smith 4집. <XO>

어린 시절 내 별명은 주로 4차원/싸이코 같은 계열. 그러다 한번은 친구 말하길 "너는 와타나베 같아"라고 하는 게 아닌가. 뭔 와타나베? 친절했던 가이드가 돌변하여 느닷없이 배꼽에 칼을 들이미는 기분이었다. 나는 태연한 척 그게 누구냐고 반문했다. 그는 상실의 시대 주인공이라고 답했다. 그게 무슨 책인지 내 쪽에서 알 턱이 없었다. 그러자 친구는 그 책을 안 읽는 건 니 교양에 빈틈, 그것도 아주 커다란 빈틈이 생기는 거라고, 나중에라도 꼭 읽으라고 당부했다.
수능을 치고 집에 돌아와 밤새도록 그 책을 읽었다. 낭패였다. 꼴보기 싫은 내 모습 감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다. 짜증이 나고 증오스럽고 치가 떨렸다. 그의 단검 같았던 눈이, 내 뻔한 낭만성이, 망쳐버린 시험이.

Pitseleh가 그런 곡이다. 나의 엘리엇 스미스 입문곡.

  1. Lily Allen 2집. <It's not me, It's you. (SE)>

80기가 아이팟에서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이라면 이 앨범이 후보로 빠질 수 없다. 내게 연예인의 표상과도 같았던 릴리 알렌. 담배 꼬나물고 무대를 즈려밟던 모습은 수험생인 내게 비할 데 없는 쾌감을 가져다 주었다.
또한 이 앨범으로 페미니즘이란 내가 사랑하는 가까운 친구의 이야기임을 대학에 가기도 전에 배웠으며... 연인으로는 다정하고 야한 사람이 최고라고, 이 곡으로 각인 또는 다짐하게 되었네

  1. Bon Iver 1집. <For Emma, Forever ago>

본 이베어는 트와일라잇 뉴문 OST에 실린 'Rosyln'으로 처음 알게 됐다. 우리 남매는 모두 그 영화를 좋아했다. 잠이 많고, 집을 떠나고 싶어 했던 대학생 누나는 지하철을 내려 떡집을 지날 때면 항상 "파써빌리티.. 파써빌리티"를 좀비처럼 웅얼거렸는데. 그런데 이 의식은 역병처럼 번져 그 앞을 지날 때면 나도 "Possibility.."를 연신 읊조리게 되었다. 당최 그 노래가 떡집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진 알 수 없었다. 어쨌든 그때 우리의 기도를 받은 떡집은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.
본 이베어 없는 본 이베어 이야기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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